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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년 4월(이는 누구인가? 마태복음 21:1-11절)

      날짜 : 2023. 04. 06

      조회수 : 3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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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한 주간의 삶 나누기

        2. 조용한 기도로 속회예배를 시작합니다.

        3. 찬송 - 150  갈보리 산 위에

        4. 기도 - 맡은이

        5. 말씀읽기 - 마태복음 21:1-11(신약 35페이지),

        6. 말씀 나누기

            종려주일은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신 날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들어갔다는 것이 그 만큼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 성은 아무도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이방인들은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유대인 여자들은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는 있어도 성전에 가서 제사를 지내는 성소까지는 들어가지를 못했습니다. 말 그대로 검증된 깨끗한 제물이 없이는 제사에 참석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도 더 기가 막힌 것은 제물을 살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도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다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예루살렘에 예수님이 들어가신 겁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제자들이나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서 큰 일을 할 것이라 믿었고, 그래서 겉옷을 길에 펴고, 종려나무가지를 꺽어 길에 펴고 흔들며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환영을 한 것입니다.

          온 도시가 이렇게 소동이 난 것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이 군사 구테타 인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는 이런 소동이 전에도 일어 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때가 언제인가 하면 바로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입니다. 이 때도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소동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동방에서부터 온 박사들이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난 사람이 어디 계시냐고 물었기 때문입니다.  헤롯이 지금 왕으로 있는데, 또 다른 왕이 태어났다는 것은 헤롯왕을 내 쫓고 새로운 왕이 되는 쿠테타로 생각을 했기 때문에 소동이 났다는 말씀입니다.

        “이 사람은 누구냐

          바로 이 질문이 복음서가 쓰여진 이유이고, 지금도 우리가 물어야 할 중요한 질문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여러분들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이것이 바로 우리가 종려주일 예배를 드리는 중요한 의미이고, 우리의 신앙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묻는  정말 중요한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우리의 신앙은 바른 길로도 갈 수 있고, 잘못된 길로 갈 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시는 것을 환영했습니다. 그리고 왜 환영을 했는지도 본문 9절에 분명하게 등장을 하는데, 그것은 바로 이 문장으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호산나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구원하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에게 이렇게 외쳤다는 것은 예수님을 구원자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구원자로 생각했다는 것을 더욱 확실하게 해 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호산나 뒤에 나오는다윗의 자손입니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메시야라는 또 다른 호칭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스도라고 믿었습니다. 구원자, 구세주로 알고 환영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냐? 이는 누구냐?라는 질문에 답은 바로 이것 입니다. 예수님의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구원의 의미가 서로 달랐다는데 있습니다. 예수님이 생각하신 구원과 예수님을 환영하는 사람들의 구원이 서로 달랐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왕조를 다시 회복시켜 줄 분이라고 믿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다윗 왕조는 가장 자랑스런 시대이고, 최고의 강한 힘을 가진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지금 로마의 식민지로 있는 팔레스틴을 해방시키기 위해 로마의 권력자들을 몰아내고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해방시켜줄 메시야, 구원자로 환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저 버리고 다른 길로 가셨습니다. 그 다른 길을 가셨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은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셔서 하셨던 첫번째 일이 무엇인지를 살펴 보면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바로 오늘 본문 바로 뒤에 나오는 내용인데 예수님은 성전에 가셔서 돈을 바꾸어 주는 환전상들과 성전 안에서 제물을 팔고 있는 상인들의 상을 뒤 엎으시고 그들을 다 내 쫓으셨습니다. 그리고 하신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1:13절입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결코 정치적 메시야, 군사적 메시야로 오신 분이 아닙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내가 원하는 것을 기도하면 다 들어주시는 도구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에게 영생의 말씀을 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참된 목적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이 땅에서 먹고 마시고 입고 사는 것에 관심을 두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것에 얽매여 그것에 끌려 다니지 말라는 겁니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이 필요한 줄 알고 계시기 때문에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시면서, 하나님에게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말씀하셨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시기 전에 두 명의 제지를 예루살렘 맞은 편으로 보내십니다. 예루살렘의 맞은편이라는 것이 장소의 의미도 있지만 이 단어를 통해 더 깊은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 2절에맞은 편 마을로 가라  맞은 편은 희랍어로 카테난티(κατεναντι)입니다. 이 단어 뒤에 나오는 네 글자는 여러분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단어인데, 바로 안티αντι 입니다. 희랍어에서 안티는 그대로 영어에서도 안티입니다. 안티는 반대라는 말입니다. 영어성경 KJV을 보면, over against 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다시 말씀 드려 예루살렘의 반대라는 말입니다. 예루살렘이 왕의 도시, 정치적 도시, 군사적 도시라고 하면, 예수님은 바로 그 반대의 길을 가시는 것이고, 율법으로 사람을 가르치고 정죄하는 예루살렘에 대한 안티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맞은 편 마을로 가서 매어 있는 나귀와 나귀새끼를 풀어서 끌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합니다.  스가랴 예언자가 예언하셨듯이, 예수님은 힘으로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겸손으로 섬기는 왕으로 오셨기에 나귀를 탔다고 오늘 본문 5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렇게 열심히 예수님을 환영했던 사람들은 얼마 가지 않아 예수님을 배신합니다. 그리고 호산나를 외쳤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사람들로 변하게 됩니다. 그리고 제자들 또한 마태복음 26 25절에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갔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분명 예수님을 환영하며 호산나 하고 외쳤던 사람들입니다. 며칠이 안되어 그들의 마음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애초부터 예수님이 바뀐 것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한결 같이 자신의 길을 가셨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변하지 않고 한결 같이 우리 곁에 겸손의 왕으로 평화의 왕으로 우리를 소박하게 도와주시는 구원자로 계십니다.  문제는 항상 우리의 마음이 아침 저녁으로 변한다는데 있습니다. 그저 세상의 욕심대로 예수님이 내 삶에 개입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내 욕심대로 움직여지지 않으면 예수님이 필요 없다 내어 버리고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사람으로 변한다는 말씀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어떻게 알고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고 종려나무 가지를 길에 펴고 흔드는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 보시고 이웃의 짐을 함께 져주는 나귀가 되어 주님의 부활에 동참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7. 헌금 -  383(눈을 들어 산을 보니)

        8. 중보기도

          (1) 고난의 십자가를 통해 부활의 영광을 향해 나아가는 새 봄을 위해

          (2) 무더워 가는 날씨에 건강을 위해

          (3) 얼마 남지 않은 학기를 마무리 하는 자녀와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9. 주기도문 - 예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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