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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년 7월(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누가복음 17:11-19절)

      날짜 : 2023. 07. 06

      조회수 : 3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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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한 주간의 삶 나누기

        2. 조용한 기도로 속회예배를 시작합니다.

        3. 찬송 - 429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4. 기도 - 맡은이

        5. 말씀읽기 - 누가복음 17:11-19(신약 124페이지)

        6. 말씀 나누기

            벌써 7월입니다. 이로써 2023년이 벌써 절반이나 지나갔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삼대 명절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날을 기념하는 절기이고, 그 유월절에서 오십일이 지난 절기가 오순절, 혹은 칠칠절, 혹은 맥추절이라는 절기입니다. 맥추절은 보리를 거두고 난 후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수장절인데, 이것은 지금의 추수감사절의 의미입니다. 지금 시대는 보리 농사를 거의 하지 않는 시대이기에 맥추감사절의 의미가 사라지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맥추감사절이 6월 말이나 7월 초가 되기 때문에 한해의 절반을 마무리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자는 취지로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적은 것 보다 많은 것이 좋고, 낮은 것보다 높은 것이 좋다고 여기며 누구나가 많은 것을 향해, 높은 것을 향해 가고 있음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하기를 많이 갖고자 하는, 높아지고자 하는 자신의 욕심이 이루어졌을을 때, 그리고 아픈 병이 나았을 때  감사를 하게 됩니다.  사실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이고 결코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 감사가 얼마나 오래 갈까를 생각하면 그리 오래가지 않음을 체감하게 됩니다. 그래서  감사에도 높이가 있고, 깊이가 있고, 넓이가 있고, 길이가 있습니다. 다시 말씀 드려 감사라고 해서 다 같은 감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느끼는 감사의 대 부분은 상대적이고 시간의 제한을 갖을 때가 너무 많이 있습니다. 월세를 살다가 내 집을 장만하면 감사합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새 집에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간 것을 보고 오면 우리 집은 낡고 초라해 보이게 되고 금방 불평이 생겨나게 됩니다. 결국 우리는 무엇이나 언제나 감사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16-18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사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은 어떤 일이 일어나든 감사하라는 말인데 그렇다면 내게 일어나는 일에 관계없이 마음으로 이미 감사할 작정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결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이것이 어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시작은 열 명의 나병환자가 예수님을 만나는 것으로 출발합니다. 이 열 명은 예수님께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본문 14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그리고 가다가 그들은 깨끗함을 받았다고 본문 14절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깨끗함을 받은 열 명 중 오직 한 사람만이 예수님께 와서 감사했습니다. 이를 두고 예수님이 섭섭해서인지 나머지 아홉은 어디 가고 너 혼자만 와서 감사하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혼자 감사하러 온 사마리아인에게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본문은 단순히 육체적으로 나병이 걸린 사람을 예수님이 고치신 사건이 아닙니다. 그 이유로 첫 째 예수님이 직접 고쳐 주었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열 명의 나병환자들에게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했고 제사장에게 가던 중에 자신들이 깨끗해 진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헬라어 원문에는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이 말은 헬라어로 αυτου(헤아우투)인데너희 자신들이라는 뜻입니다. 단지 육체적인 몸을 보인 것이 아니라 너희 자신 즉 너희 자신의 인격, 마음, 너희 자신의 삶을 보이라는 말입니다. 영어 성경 NIV에서는 그래서 youself로 번역을 했습니다. 깨끗해진 너희 삶과 마음을 보이라는 말입니다.  더욱이 오늘 본문에서는 나병이면서도 나았다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본문 14절에서, 그리고 17절에서깨끗함을 받았다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깨끗함을 받았다는 말이 병이 나았다는 말과 같은 의미로 쓰인 것이긴 한데, 이 깨끗함을 받았다는 헬라어는 καθαρίζω(카다리조)라고 하는데 이것은 주로 죄에 대해 깨끗해졌다는 말로 성경에서는 사용되는 단어 입니다. 그래서 여기 나병은 육체적인 질병인 동시에 우리의 죄나 허물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살면서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고 통증이 없다고 하면, 우리는 마음의 나병이 걸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로 오늘 예수님께 다시 돌아와 감사를 하지 않은 9명은 육신의 나병 뿐만 아니라 마음의 나병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 아홉명은 어찌해서 감사하지 않았는가가 문제로 남게 됩니다.

          이 본문에 등장하는 고침 받은 아홉명을 제외한 한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 사람은 바로 이방인이었고, 16절에는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 사람을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꼭 집어 말하는 것은 나머지 9명은 유대인이라는 암시가 들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은 순수하게 유대 민족의 전통을 지켰는데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방 사람들과 결혼하여 일종의 혼혈 민족이 되었기 때문에 사마리아 사람들을 개 취급을 했을 정도 였습니다. 그러니 9명의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이 사마리아 사람까지 병 고침을 받은 것이 문제가 될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유대인인 예수님이 유대인들만 고쳤어야 하는데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는 사마리아 사람까지 고쳐 주었으니 상대적으로 기분이 나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서 남보다 내가 더 나아야 감사하는 이기적인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아홉명 유대인들은 사람 취급을 안하는 이방인인 사마리아 사람이 나은 것에서 감사할 기분도 사라졌을 것입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고, 의인이라고 자처하는 유대인은 죄에 대한 통증을 가지고 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단지 죄에 대한 자각, 통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자신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든 모든 피조물에 대한 느낌입니다. 죄만이 아니라 기쁨, 놀람, 환희, 감격, 감사, 깨달음의 느낌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기쁨과 놀람과 감사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가 너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깨닫고 감사하고 감격해야 하는데 그저 무덤덤하게 듣고 흘려 버립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고 은혜 받았다고 눈물을 흘리는 성도를 찾아 보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바로 이 느낌, 이 놀람, 이 환희, 이 감격, 이 감사에 대해 무뎌진 세상에 살다 보니 우리 스스로 이 무딘 마음이 당연해 졌고, 신앙생활도 무뎌져 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은 그 아홉명과 다르게 자신의 죄의 통증을 보았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변화에 대해 감격하고 기뻐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본문 15절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다시 예수님께 찾아 왔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그의 삶에 하나님의 모습이 드러났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느낌이 무뎌진 나병환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는 하나님이 만든 세상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 사람이 되었습니다. 진정한 감사는 거기서 나오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에게 예수님은 본문 19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누가는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주어지고, 거기에 대해 우리 사람이 응답이 믿음과 감사로 나타날 때 바로 거기에 구원이 주어지게 됨을 분명하게 말씀을 합니다.  그래서 누가는 이 본문을 단순한 이적 이야기가 아닌 믿음과 구원의 이야가로 발전 시켜 우리에게 은혜의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작은 것에서, 정말 보잘 것 없는 것에서, 아니 오히려 나쁜 환경에서 기쁨과 감격과 환희와 감사를 느낌으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를 축원을 드립니다.

        7. 헌금 -  383(눈을 들어 산을 보니)

        8. 중보기도

          (1)  남은 하반기에 더욱 성숙한 감사가 넘치는 가정과 직장을 위해

          (2)  새학년 새학기를 시작하는 자녀들을 위해

          (3)  가장의 직장과 가족의 행복과 기쁨을 위해

         9. 주기도문 - 예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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